부드럽고 따뜻한 빛이 비치는 쪽으로
창업 200년, 이토 곤지로 상점(伊藤権次郎商店)의 8대째, 이토 히로키(伊藤博紀)씨의 인터뷰. 야메초칭(八女提灯) 제등의 매력과 젊은 장인의 긍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이 풍부한 지쿠고(筑後) 지방에서 자란 전통공예
화지(和紙)를 투과하여 우리를 비춰주는 부드러운 빛을 찾아서… 후쿠오카시의 중심부에서 차로 약 1시간. 현의 남서부, 지쿠고 지방에 위치한 야메시는 아름다운 산의 자연과 맑은 물을 자랑하는 인구 약 6만 명의 지방 도시이다. (※2020년 국세조사 인구(속보)에서 발췌) 에도시대(1603~1868년), 에도막부 말기(19세기 후반)까지는 명사 아리마 가문(有馬家)을 번주로 한 구루메번(久留米藩)이 있었으며, 성읍마을로서 활기찼던 중심부의 거리에서는 당시의 영화의 자취가 느껴진다.
비옥한 토양과 지쿠고가와 강으로 합류하는 맑은 물은, 전통공예의 문화를 성숙시키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본 유수의 차(茶) 산지로 유명한 야메는 대나무와 데스키 와시(手すき和紙:손으로 떠서 만드는 일본의 전통 종이) 등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야메 후쿠시마 불단”과 “야메 석등롱” “야메 일본 팽이”와 같은 다양한 공예문화가 꽃을 피우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매력이 전해져오고 있다.
제등은 중국에서 전래된 조명기구로 옛날에는 내부에 양초를 밝혀 들고 다녔었다.
본래는 축제와 의식 등의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양초가 보급되기 시작한 에도시대 이후,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는 조명기구로 서민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활모양의 손잡이에 걸린 “유미하리 초칭” 제등과 묶여 매달린 형태의 “쓰루시 초칭” 제등이 대표적인 형태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크기, 형태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8월에 찾아오는 명절인 “오본”이 되면 선조를 공양하기 위하여 “본초칭(盆提灯)” 제등을 장식하는 문화가 있다. 또한, 절, 신사, 불각에서는 신전에 봉납하거나, 예능 관계자들이 행운을 빌며 장식하는 고신토(御神灯)라고 불리우는 제등도 익숙한 광경이다. 이렇듯 제등은 일본인의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도구의 하나로써 문화적, 실용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지정 전통적 공예품인 “야메초칭(八女提灯)” 제등도 이러한 계보 속에서 파생한 보기 드문 수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19세기 초기에 야메 후쿠시마초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이쇼 시대(1912~1926년) 이후에는 야메초칭 특유의 “본초칭(盆提灯)” 제등이 주류가 되어 규슈 전역에 퍼져나갔다.
야메의 문화가 결집된 유일무이한 장인의 기술
야메의 시가지에는 지금도 서정적인 상가 건축(町家建築)이 남아있다. 에도시대에서 쇼와(1926~1989년) 초기까지의 “신카베즈쿠리(기둥이나 보를 숨기지 않는 일본의 전통 공법)” 양식이나 메이지 이후의 “이구라즈쿠리(점포와 주거를 한지붕 아래에 짓는 공법)” 등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옛 목조가옥 중 한 채가 이토 곤지로 상점(伊藤権次郎商店)이다. 가구와 창호를 만드는 지물상을 운영하고 있던 초대 “이토 야헤이(伊藤弥平)”가 1815년에 창업. 2대째인 “기요하치(清八)”가 선대를 공양하기 위하여 본초칭 제등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4대째 곤지로(権次郎)가 현재의 상호를 지었다.
절, 신사, 불각이나 음식점 등에서 장식하는 “장식용 제등(装飾提灯)”을 야메에서 만들고 있는 유일한 곳. 그 역사를 이어받은 8대째 이토 히로키씨는 1990년생. 32세의 신예의 젊은 장인이다. 가업을 이어받기 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일반기업에 취직. 대기업 상업시설에서 기획, 영업의 경력을 쌓아, 5년 전에 본가로 돌아와서 야메초칭 제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야메초칭 제등의 특징은 그 독특한 제법에 있다. 국내 유수의 산지로 알려져 있는 교토, 기후에서는 토대가 대는 나무틀에 1개씩 뼈대가 되는 대나무 살을 감아 나간다. 한편, 야메초칭 제등의 경우, 화지(和紙)로 길게 이어 붙인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나무 살을 장인이 나선형으로 손으로 말아가며 1개의 제등으로 완성시킨다. 이 방식은 “이치조 라센시키(一条螺旋式)”라고 불리우고 있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재료로 사용되는 대나무 살과 데스키 와시(手すき和紙)까지 모두 그 고장에서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야메에서 제등 제작이 계속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일단 나무틀을 조립하여 토대를 만든다. 그리고 나무틀을 받침대에 고정하여 회전시키면서 대나무 살을 감고, 그 위에 화지를 발라간다. 야메초칭 제등을 “이치조라센시키(一条螺旋式)” 방식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화지와 풀로 길게 이어진, 로프처럼 유연한 대나무 살이다. “이 이음새 하나를 보더라도 장인의 기량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이토씨. 풀을 너무 많이 칠해도 안 된다. 2개의 끝을 너무 단단히 조이지 않고 “틈새”를 만드는 것이 포인트라고 한다.
이렇게 대나무 살을 모두 두른 뒤, 표면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나무틀을 보강하고, 표면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붓으로 두드리듯 가볍게 풀을 칠하고, 화지를 면마다 재빠르게 밀착시킨다. 곡선이 급격해지는 양 끝부분은 당연히 화지가 구겨지기 쉬워서 붙이기 어렵다. 다 붙인 뒤에는 면도칼로 불필요한 부분의 종이를 조심해서 단숨에 잘라낸다. 이 작업을 반복하여 모든 부분에 화지를 붙인 뒤, 하룻밤 말린 뒤에 나무틀에서 떼어낸다. 제등의 뚫린 구멍을 보강하기 위하여 안쪽에 덧대는 “우치바리”를 한 뒤, 손가락으로 입체감을 내고, 위아래에 나무껍질을 덧대면 완성이다.
그다음의 “에쓰케”라고 하는 색칠하는 공정에서는 화가인 친형 다쓰야(達耶)씨가 이어받아 제등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약 10명의 장인이 각각의 공정을 담당하는 “분업제”도 200년 이상 이어져 온 전통 있는 가게를 지키는 중요한 방식인 것이다.
일본의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絵)에도 자주 등장하며 일상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제등. 사람들의 삶을 부드럽게 비춰주는 일본의 전통적인 조명은 기능적인 역할을 초월한 디자인성과 조형미도 함께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호평받는 야메초칭 제등, 그 본질을 찾아서
청바지 소재를 사용한 제등이나, 요괴나 해골이 그려진 제등. 이토씨의 공방을 둘러보면 이채로운 특이한 제등이 당연하단 듯이 걸려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업이나 상점 등, 다른 업종과의 콜라보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쏟아온 이토씨. 전통을 중시하는 공예업계에서 전위적이고 “튀는” 도전을 이어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길을 향해 전진하며, 이제까지 없었던 참신한 상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는 점을 보며 이토씨의 대단함과 예술가로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열정이 담긴 제작품들은 해외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이토씨는 제작팀의 의뢰를 받고 2018년에 공개된 디즈니 영화 『호두까기인형과 4개의 왕국』(원작: The Nutcracker and the Four Realms)의 연출을 위하여 오리지널 야메초칭 제등을 해외에 납품. 그 외에도 2020년에 공개된 Netflix 오리지널 영화 『레베카』(원작: REBECCA)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스튜디오에 납품하였다. “제등은 일본을 연출하는 물건”이라고 믿어왔던 이토씨는 제등의 미적가치를 재인식하고 더욱 커다란 가능성을 확신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토씨의 작업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제작을 향한 진지한 자세와 순수한 정신이리라.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제작 시에 생산효울과 이익이 중시되지만, 저희의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신들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희 장인들은, 효율이나 이익이 아니라, “마음”으로 신들과 마주합니다. 신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잊지 않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절, 신사, 불각 등 신이 계시는 장소에 작품을 바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성한 영역에 들어갈 때는 몸과 마음이 단정해지는 기분입니다”라고 말하는 이토씨. 그러한 장소의 하나인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에 있는 구시다 신사(櫛田神社)를 방문하였다.
“구시다 신사”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축제인 하카타 기온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의 무대가 되는 신성한 장소이다. 후쿠오카시의 번화가, 나카스에서 도보로 수 분 정도의 위치해 있으며 “오쿠시다상” 이라는 애칭으로 친숙한 인기 있는 명소이다. 특별한 의식에서만 사용하는 제등 외에도 평소에 “나카진몬(中神門)” 문의 좌우에 장식하고 있는 “니샤쿠고순마루(二尺五寸丸)” 제등은 이토 곤지로 상점의 작품이다. 이 제등의 모티브는 경내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그 심볼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색을 바꿔가며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선명한 노란색이 눈길을 끄는 이토씨의 제등. “걷다가 멈춰서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라고 신사 곤네기 (権禰宜) 직책의 다카야마 사다시 (髙山定史) 씨가 알려주었다.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저희들도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을 이어가는 다카야마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후쿠오카 하카타의 토지신을 모신 장소에 야메초칭 제등을 봉납하는 것. 이러한 귀중한 경험이 이토씨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제등을 밝힌다는 것은 신들과 선조들을 인도하는 것. 빛의 저편에는 일본의 전통과 정신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제등은 이세계(異世界)와 우리를 연결하는 매체이며, 이토씨는 작품을 통하여 매일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토 곤지로 상점(伊藤権次郎商店)
이토 히로키(Hiroki Ito) / 야메초칭(八女提灯) 장인
1990년 후쿠오카현에서 출생. 대학에서 마케팅을 배우고 졸업한 뒤에는 패션빌딩의 프로모션을 경험. 그 뒤, 후쿠오카 야메에서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토 곤지로 상점”에서 장인으로서 본격적인 제등 제작을 시작. 현재는 8대째로서 전통을 지켜가면서도 나날이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고 있다.
이토 곤지로 상점(伊藤権次郎商店)
후쿠오카현 야메시 모토마치 220(히가시후루마쓰)
0943-22-2646
구시다 신사(櫛田神社)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가미카와바타마치 1-41
092-291-2951
상시 개방 중(나카진몬의 개방은 4:00 ~22:00)
인터뷰와 텍스트: Mayuu Yasunaga(Chikara)
통역: Aaron Schwarz
사진: Kazuhiro Kaku
프로젝트 디렉터: Chikara